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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봄씨의 일상

당연함에 대하여

 

 대학교 1학년, 열정과 욕망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나는 매우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구체적이지도 않은 그것은 바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늘 계획을 크게 세우고 그 계획을 지키려고 했다. 당시 철학과에 입학한 나는 오히려 4학년이 된 지금보다 그때가 더 철학도스러웠던 것 같다. 오죽하면 학과 교수님께서 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하셨을까. 나는 그만큼 수준 높은 사고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공부를 할수록 매우 고독했고, 보이지 않는 벽에 계속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현재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1학년 2학기, 나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수업을 만났다. '성과 철학'이라는 이름의 교양 수업.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존경스럽고 매력적이었다. 수업 시간에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당연한 것에 왜?를 묻는 것이 철학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에 대해 한 번쯤이라도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지를 반문하게 만들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고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당연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왜 그럴까?하며 의문을 가진 적도 드물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이렇게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니. 변하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고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년동안 몸에 벤 습관 때문인지 글을 쓰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글 쓸 구실을 찾고자 1학년 말 대학 신문사에 지원했다. 수습기자 생활을 거쳐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고된 학보사 기자 생활을 견뎌냈다. 매주 A4 3장 정도의 기사를 쓰니 글쓰는 속도는 당연히 늘어났고, 사용하는 어휘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글의 알맹이었다. 늘 시간에 쫓겨 쓰는 기사는 부족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돌아봐도 한 번도 내 성에 찼던 기사는 없던 것 같다. 기사의 특성상 내 생각을 담기보다는 중립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 권의 책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독서토론스터디 덕분에『사이언스이즈컬쳐』라는 이름의 책을 아주 일부분 읽게 되었는데, '객관성과 이미지'라는 파트를 읽다가 '객관적 진실이란 없다, 진실은 합의일 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 폰트쿠베르타의 말이 '당연한 것은 없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권력의 문제는 의미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한 자각이 중요함을 깨닫게 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당연함'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자세가 지금 이순간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당연함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생각으로만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일단 행동해봐야 겠다는 것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나는 무엇인가 시도하기 전에 지레 겁을 먹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일단 하고 보는 강단이 부족했던 것 같다. 대학생으로서 남은 1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당연함'에 '왜'를 묻는 용기가 지금 이순간 절실히 필요하다. 용기는 자신감으로 부터 오며 자신감은 나를 믿음으로써 온다는데 ,남은 1년 철저히 나를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철저히 믿고 철저히 의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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